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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일지 51일차

2026년 11월 7일 토요일 * 나는 순간순간 감사하고 있는가? -아이들과 남편이 저렇게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지않은가. -나도 안아프고 컨디션이 좋아졌잖아. 잠도 잘 잤다고~~~ -수술 잘 되고 몸에 암이 남아있지 않은 R0이 되었잖아. 이랗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냐. 게다가 난 오래살거라고~~~~ 어젯밤에 꽤 큰 복통이 있었고, 진통제를 먹었고, 꽤 늦게까지 잠을 잤다. 오늘은 하루종일 누워 있었고, 자다깨다했다. 그래도 세끼를 충분히 먹으려고 했다. 이제는 좀 누워있지 말고, 할 일을 미루지도 말자. 어쨌든 나는 아주 큰 고비를 넘겼고 어차피 끝에는 다 나을거니까.. 그리고 나는 더 열심히 살거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낼거니까... 닥터X를 보며.. 병원 갈 일이 많은 요즘, 의사쌤들이 멋져 보이더라. 나를 살게 해 준 의사들을 포함해 그들의 소명.. 그들도 사람이기에 두려울 때도 있을테고 늘 좋은 소식만 알려주고 싶었을텐데...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다른 생명을 살리려는 그들이 대단하다. 내가 의사였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부터 어떤 직업이든 사람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 

항암일지 50일차 (11/6)

 2026년 11월 6일 금요일 대상포진, 폐렴구균 접종 - 이제 병원에 가서 문진할 때, 암걸린 적이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해야 한다. 나는 슬쩍 멈칫하고, 받아적는 사람도 움찔한다. 의사쌤을 만났다. 3기B라고 하니까 보조항암이 아닐거란다. 변이에 맞는 약을 더 쓸거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선생님이 보조항암이라고 표현하셨고, 종양내과쌤이 방사선까지 최대 5개월 걸릴거라고 말씀하셨다. 변이가 나와서 추가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도 어쨌든 나는 완치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누가 뭐라도 해도 다 괜찮다.. 어차피 나는 낫는다. 마지막에는 다 낫는다. 나는 특이한 경우니까 일반적이지 않게 항암제도 나를 위해 열 일 할거고, 나는 거뜬히 항암을 받아낼거고, 암세포는 모두 사멸될거다. 그래서 걱정이 줄었다.   밤 10시 40분경 복통이 너무 심해 깜짝 놀랐다. 수술때도 안 아팠는데 갑작스러운 생리통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아팠다.아산병원에서 받은 진통제 한 알을 먹고 누웠더니 금새 잠이 든 것 같다.  

항암일지 49일차 (11/5)

 2026년 11월 5일 목요일 지금 내 몸속에는 암덩어리는 없다. 하지만 미세하게 남아있을 암세포들을 없애기 위해 보조항암을 할 예정이다. 3주동안 몸을 잘 정비하여 항암에 임하자. 그런데 집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드라마만 보는 걸 언제까지 할텐가. 연주를 만났다. 언제나 고마운 연주...

항암일지 4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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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4일 수요일 오늘 다학제 진료가 있었다. 먼저 호흡기내과 의사쌤이 "수술이 잘 됐어요. 그런데 병기가 좀 높으니 보조항암을 하자구요.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방사선을 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뒤이어 종양내과 쌤이 "머리 안빠지는 12주짜리 항암을 할거고요. 방사선까지 하면 4.5~5개월 걸릴거에요. 미국에는 안 가도 돼요? 그리고 점액성 선암이니까 유전자 검사로 다른 변이 있는지 확인해볼거에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우울하지 않았고, 무엇을 할 건지 딱 제시해줘서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같이 들어갔던 동생도 의사쌤들이 웃고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오히려 명료해진 치료때문에 맘이 놓였다.  항암은 3주 뒤부터 시작된다. 그전에 폐렴구균, 대상포진, 독감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금요일에 가서 파상풍까지 맞을거다.  나는 이제 항암식단을 연구해서 잘 먹기 시작할거고 나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도 열심히 할거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글쓰기로 마음을 꺼내고 긍정적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을거다. 나는 왠지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이 기쁜 마음으로 푹 자야겠다.

항암일지 4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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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3일 화요일  T4N2aM0 3B기 R0  절단면에 암 남아있지 않고, 림프절 34개 중 5개 전이 확인, 다만 오른쪽 폐 주변 -점액성 선암에서는 림프 전이가 별로 없다는데 난 정말 특이 케이스이긴 한가보다- 원격전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니까, 일반적인 점액성 선암의 경우들보다 항암제가 더 잘 들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래는 오늘  ChatGPT가 말해줬다. 응. 당연히 기뻐해도 돼. 아주 많이 기뻐해도 돼. ❤️ 나는 네가 이제 조금은 마음을 놓고, 지금까지 이뤄낸 치료의 성과를 충분히 누렸으면 좋겠어. 처음 아주대병원에서 수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때를 생각해 봐. 그때는 항암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설명을 들었지.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니. * R0 완전절제: 최종 조직검사에서 절제면에 암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어. * M0: 다른 장기로의 원격전이가 확인되지 않았어. * 림프절 전이: 34개 중 5개에서 발견됐지만, 해당 림프절들은 모두 절제했어. * 수술 후 회복: 오른쪽 폐전절제술 후 5일 만에 퇴원할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어. * 남은 폐 상태: 오늘 X-ray에서도 왼쪽 폐가 잘 펴져 있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어. * 앞으로의 치료: 의사가 완치를 목적으로 보조항암치료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이야기했어. 이건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나열한 이야기가 아니야. 실제로 네게 일어난 좋은 변화들이야. ###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한 이유 나는 의사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해. 암 치료에서 의사는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서 말할 수는 없어. 특히 림프절 전이가 있었고, 점액성 선암의 항암 효과에 불확실성이 있으니 더욱 신중하게 설명했을 거야. 하지만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이 미래가 나쁠 것이라는 뜻은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에 "종양내과 교수님이 완치를 목적으로 항암하자...

항암일지 4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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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희망 : 다 잘 될거라고 말은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잘 안될거라는 의심과 불안을 가지고 있으면 희망의 힘이 발휘되지 않는다. 나는 진짜 희망과 가짜 희망 중 어느 쪽에 가까웠을까? 처음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걸로는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나는 이걸로 큰 일이 나지 않을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무섭긴 했다. 진짜로 2년반만 남은거면 어떻게 하지? 치료를 시작하기 전인데 미래의 두려움을 먼저 샀던 거 같다.  '천정은'이라는 분이 간증하는 것을 보았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 후에 몸이 덜 아픈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여명 몇 개월의 삶을 몇 년으로 연장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죽을 때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 건강하게 보였던 그녀가 죽을 때에는 살이 너무 빠진 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되면 어떻게 하지?' 그 모습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잊으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다 죽게 되는구나...' 슬펐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녀가 생명에게 주어진 생명은 훨씬 더 길었고, 그녀가 하나님의 곁으로 갈 때에는 겉모습과 달리 평온했다는 걸 떠올렸다.  나는 잘 살 것 같으면서도, 내 몸 속에 암세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이가 되지는 않았을까 두려웠다. 나는 가짜희망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나는 수술을 하게 되었고, 가장 우려했던 절단면에 남을 암이 실제로는 없게 되었고, 다른 장기로의 전이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기적이라고 여긴다. 하나님과 주변에서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게 펑생 감사를 해도 모자르다. 임파선의 전이 의심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우려라고 생각한다. 향후 보조항암도 덤덤하게 받아들일거고, 계속 식단과 운동,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것 이다. 한편 우리집에 닥친 위기를 나는 한국에 남아야 할 기회로 여긴다. 내년 봄에 아이들과 벚꽃놀이를 갈거고, 학원을 차려서 수업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항암일지 45일차

 2026년 11월 1일 일요일 애달프고 힘들구나.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나쁜 일들이 몰아서 오는걸까? 내가 아픈 것도 서러웠는데 남편마저 해고라니... 물론 우리는 좋은 방법을 찾을거고 끝까지 잘 살아낼거지만 오늘은 좀 울고 싶구나.  십년전쯤 안성으로 막 이사를 갔을 때다. 진짜 집에 돈이 없어서 엄마한테 얼마 빌릴 수 있을까하고 딸을 데리고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엄마도 해줄 돈은 없었다. 나는 차마 조르지는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 비참했고 앞으로 이런 일들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때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나왔을까? 빚을 내 빚을 갚았다.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한달에 한번씩 전단지 돌리고 학원생 한명이라도 끌어모으려고 노력했었다. 3년이 지나고  코로나가 터졌을 때도 학원 문을 몇 달 못 열었어도 나는 그 시간들을 잘 지나왔었고 오히려 풍족하게 살았었다. 그래도 멕시코와 미국에 살면서 빚도 많이 갚았고,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생각했는데 이런 일들이 생겼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 살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럴 형편이 아닌데 허세를 부렸던가? 내가 조금이라도 욕심냈던 평안이 이렇게 돌아오는걸까? 나 꽤 열심히 살았는데, 긍정적으로 도전하며 산 것 같은데 다 아니었던가?  몸만 다 나으면 또 예전처럼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또 회원 모집하면서 경쟁하며 아등바등 살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매일매일 열심히 블로그 쓰고 사업체를 이만큼 키워 온 동생보면서 부러움을 느낀다. 나도 좀 더 내일에 매진해보는 게 어떨까? 말로만 이렇게 한다한다 하지말고 진짜 글을 써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찾아가는 게 어떨까? 지금 넘어진 것은 잠시 숨을 고르라는 거고 나와 남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또 다시 일어서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나 아직 47살이고~ 20년 더 살아야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빚을...